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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햇살이 머리 위로 부서져 내리던 날.
소년은 작은 금붕어를 쫓아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 금붕어는 아주 어여쁘고 조그마해서 쫓지 않으면 큰일 날 것만 같은 불안감을 안겨주었는데 소년은 거기에 한눈이 팔려 무엇을 지나쳤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일종의 기억의 파편이자 잔재 같은 부스러기들이 허공 위에 뿌려졌다. 한참을. 금붕어를 쫓고 쫓아 도착한 곳은 순수함이라는 이름의 어항 속. 악의 본질이자 선의 원천에 도착한 소년은 끝끝내 금붕어를 쥐어 들었다. 햇살을 담아 반짝이던 비늘이 소년의 손에 닿자마자 옅게 바스러진다. 숨이 가빠올랐다. 한참을 쫓은 끝에 잡은 것은. 그것은. 단 하나의 거짓도 섞이지 않은 허무함이었다.
마침내 소년은 깨달았다.
애초에 그곳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너무 뒤늦게 깨달아 버린 것이다.
텅 빈 어항을 두 팔에 한 가득 안아든-
[다자츄] 少年─悲哀
소년은 소년임을 연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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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두툼한 책이 작은 손 위에 올려졌다. 꼬물이는 작은 손 위로 종이장이 하나, 둘 날리며 동시에 식어버린 홍차 내음이 콧잔등을 간지럽혀 왔다.
달콤한 젖내가 날 것 같은 뽀얀 살은 이미 분유 내를 잊은 지 오래. 시체 썩은 내와 피 비린내가 진동하는 살갗을 소년은 얇은 붕대로 감아내고 있었다. 익숙해진 악취에 소년은 숨을 들이켰다. 그것은 어떠한 감정도 섞이지 않은 것이었고, 그러므로 무엇보다 숭고했으며, 신성한 것이리라.
소년은 평소처럼 두툼한 책을 넘기다 문득 창밖으로 떨어져 내리는 햇살을 쳐다보았다. 속이 울렁였다. 햇살은 도무지 여린 제 피부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기에. 소년은 언제나 두터운 커튼을 치는 습관이 있었다. 오늘도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날이었다. 익숙하게 책을 올려두고 커튼 끝을 조금 잡아당겼을 때, 곧게 떨어지는 강한 햇살에 의해 눈살을 찌푸렸다. 너무도 강한 햇살이었다. 마치 제 아가미가 바싹 말라버릴 것만 같았다. 어서 숨구멍을 만들어야 했다. 소년은 곧바로 한쪽 커튼을 잡아당겼다. 그것 만으로도 조금은 나아진 기분이었다. 이윽고 반대쪽 묶인 커튼을 살짝 풀어내자 무언가 눈 앞에 둥실, 떠다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여름날의 아지랑이처럼 살랑이며 시야를 흔들어댔고 소년은 이윽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푸른 바다와 눈이 마주쳤다.
아지랑이 마냥 춤을 추던 그것은 오렌지 빛깔로 햇살을 머금은 금붕어였다. 반짝이는 비늘로 몸을 뒤덮은 금붕어의 눈 안은 바다로 장식되어 있었고 기괴한 모자까지 쓰고 있어서. 그 모습은 실로 우스꽝스러웠다.
- 톡, 톡.
작은 지느러미로 창문을 두드린 금붕어는 아가미를 뻐끔이 열어젖혔다. 아무래도 많이 더운가 보다. 생각하며 창문 새를 조금 벌리자 금붕어는 소년을 향해 웃어 보였다.
" 뭐야, 여기에도 나랑 나이 때가 비슷한 녀석이 있었잖아. 아저씨들만 드글이는 줄 알았는데. "
눈이 접히고 입꼬리가 부드러이 호선을 그리는 소년다운 웃음이었다. 그것은 제가 감히 따라 할 수 없는 감미로운 웃음이었고 저는 괜히 그것이 거북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기분이 소년의 몸을 좀먹어 왔다. 머릿속이 정신없이 흔들렸다. 그 두통에 다시 창문을 닫으려 유리창 끝을 누르자
" 안녕. "
그 금붕어는 제게 인사를 해왔다. 소년은 조용히 손을 내렸다. 꽤나 시끄러운 금붕어다. 인사가 우선시 되어야 할 상황에서 자기 할 말만을 지껄이다 이윽고 문을 닫으려니 인사를 해옴에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소년의 표정이 더욱 가라앉았다.
" 너는 이름이 뭐냐? "
단지 시끄러운 금붕어인 줄 알았는데 예의까지 없는. 쓸데없이 아름다운 금붕어였다. 보석같이 반짝이는 푸른 눈이 바다를 그리듯 크게 일렁였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왠지 생선 비린내가 나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 바다는 마치 소년의 몸 전체를 덮어올 것 마냥 크게 움직였다. 숨이 막혀왔다. 온몸을 큰 파도가 덮어버리는 상상까지 해버렸다.
" 남의 이름을 묻기 전에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것이 예의 아니던가. "
" 하하, 꽤 딱딱하잖냐, 너. "
하긴, 코요 누님이었어도 그렇게 말씀하셨을 테지만. 금붕어는 씨익, 아까보다 더 밝은 웃음을 짓더니, 나카하라 츄야다. 아주 건방지게 자신의 이름을 턱 하니 내던졌다. 필요도 없는 이름이었다. 금붕어는 웃음을 유지한 채 어깻죽지를 한번 들썩였다. 그것은 자신감이 넘치는 듯한 모습이었다.
" 너는? "
" ……꼭 알려줘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 하네만. "
" 하아? 남의 이름 들었으면 네 쪽도 알려주는 게 당연한 거잖아? "
멋대로 알려줘 놓고서는.
소년은 시끄러운 금붕어에 창문을 열었던 것을 후회했다. 그냥 조용히 커튼만 치고 읽던 책을 마저 읽을 걸. 금붕어와의 대화는 시간 낭비였다.
하지만 퉁명스러운 반응에도 금붕어는 눈을 반짝였다. 그리고 소년은 반짝이는 것을 싫어했다. 무척이나 제 모습과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기에. 소년은 속이 울렁거림에 당장에라도 창문을 닫고 싶었지만 이름을 말해주지 않으면 물러서지 않을 것 같은 기세에 작은 날숨을 내뱉었다. 이런 타입은 딱 질색이다.
" … 다자이 오사무. "
그럼에도 작게 이름을 내어주자 금붕어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다시금 웃음을 띄웠다.
쨍한 웃음.
그 웃음은 무언가와 많이 닮아있었는데 소년, 그러니까 다자이는 도무지 무엇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전두엽을 금붕어가 갉아먹기라도 했나 보지.
금붕어는 이내 살짝 열린 창문을 멋대로 열어젖혔다. 강한 햇살이 다시금 들어왔다.
" 그래, 다자이. 그럼 너도 마피아야? 몇 살? 누구따라 들어온 건데? 아, 혹시 코요 누님이라고 아냐? "
쨍알 쨍알.
햇살과도 같은 칼랑 한 목소리가 귀를 뚫고 들어왔다. 시끄럽다. 다자이는 그렇게 생각하며 무심하게 그를 올려다보았다.
사실, 금붕어 주제에 어떻게 사람의 말을 하고 날아다니는지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그저 저보다도 더 소년다운 웃음이. 그 웃음이 속을 울렁이게 만들어왔다. 다자이는 금붕어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그의 물음을 듣다 부드러이 웃음을 띄울 뿐이었다. - 그 웃음은 그 나이 때에 맞게 자연스러웠지만 어딘가 기괴하다고 나카하라는 생각했다. - 아무 대답이 없자 꽤나 민망한 건지 헛기침을 한 금붕어는 곧장 사과했다. 또래를 만나는 건 처음이라 너무 들떠 버렸네-.라고. 그 사과에서도 제가 연기할 수 없는 순수함이 느껴져서 다자이는 거북함이 느껴졌다. 그리고는 평소처럼 유리구슬 마냥 맑은 웃음을 띄웠다. 여름 햇살은 지독히도 몸에 좋지 않았기에 큰 대목만 답을 해주고 돌려보내려는 심산이었다.
" 열넷. "
" 어? "
" 자네가 나이를 묻지 않았는가. "
아,
금붕어는 탄식했다. 고풍스러우면 서도 아직까지 앳된 얼굴을 한 다자이는 열넷의 모습을 집어삼킨 지 오래였다. 어쩌면 저보다 서너 살은 더 많아 보이는 절제된 모습에서 나카하라는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하지만 저와 동갑이라는 소리가 꽤 달갑게 들려와 굳이 그 느낌을 알아채려 하지 않았다. 금붕어는 알고서도 눈을 내리누른 것이었다.
맑은 표면 아래 위화감이 내도는 웃음이지만 아무렴 어떠하리.
" 나도 열넷인데. 그럼 들어온 건 누구 따라서? "
" …모리 씨. "
" 아, 코요 누님께 들어본 적 있는 것 같다. 나는 말이지- "
금붕어의 쨍알거림이 다시금 시작 되었다. 금붕어 주제에. 저보다도 더 소년스러움이 물씬 느껴져서 다자이는 입술을 내리 눌렀다. 그리곤 이내 웃음을 띄웠다. 예전에 실없는 책에서 봤던 밝은 세상의 소년을 다자이는 완벽하게 연기해 냈다. 그리고 그 연기에 금붕어는 꽤나 만족한 듯 맑은 웃음을 몇 번이고 터트린다. 간드러지는 아이의 웃음 소리. 밝은 햇살과 반짝이는 보석 같은 눈. 생기 넘치는 비늘까지.
모두 저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고.
소년은 웃으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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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붕어와 소년의 첫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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